펀드 매니저로 유명한 존 템플턴(Sir John Templeton) > 주식공부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뒤로가기 주식공부

펀드 매니저로 유명한 존 템플턴(Sir John Templeton)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저니 댓글 0

본문

템플턴(Sir John Templeton)은 월스트리트 역사상 가장 뛰어난 투자자 중 한 명으로, 또 글로벌 펀드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창조적인 펀드매니저로 손꼽힌다.

템플턴은 아시아 경제위기가 정점에 달했던 1997년 말부터 한국과 싱가포르, 호주 주식시장에 과감히 투자하면서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1912년생으로 이미 90대 중반에 접어든 템플턴은 1992년에 자신의 뮤추얼펀드 회사를 매각하면서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하지만 그의 투자 철학과 원칙은 여전히 월스트리트의 금과옥조로 여겨지고, 그가 강연을 할 때면 유명 펀드매니저와 투자자문가들이 몰려든다. 그는 월스트리트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정신적 지주인 셈이다. (그러나 2005년 이후 건강이 악화돼 공식적인 자리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템플턴을 소개할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일화가 있다. 다름 아닌 오늘의 그를 있게 한 첫 번째 투자 성공 사례다. 예일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전공하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교에 로즈장학생으로 유학 간 템플턴은 미국으로 돌아와 메릴린치의 투자자문 부서에서 잠시 근무한 뒤 지질 탐사 회사로 옮겼다. 이때 유럽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다는 소식을 접하자 1929년 이후 이어진 10여 년의 대공황이 이제 끝나게 됐다고 판단하고 1939년 9월 주식투자에 나섰다. 그는 증권회사에 전화를 걸어 1달러 이하로 거래되는 모든 종목을 100달러어치씩 매수해달라고 주문했다. 이렇게 해서 그는 104개 종목에 1만 달러를 투자했다. 4년 뒤 이들 주식의 가치는 4만 달러가 됐고, 그는 이 자금으로 자신의 회사를 출범시킬 수 있었다.

사실 여기까지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템플턴의 ‘1달러 미만 저가주 투자 성공담’이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템플턴의 진면목이 숨어 있다. 당시 그의 나이는 스물일곱에 불과했지만 이미 경제의 속사정을 꿰뚫고 있었다. 전시에는 대부분의 산업용품과 서비스의 수요가 엄청나게 늘어나 이류•삼류 기업들도 이익을 낼 수 있으며, 미국은 아직 참전하지 않은 상태지만 곧 연합국에 전시 물자를 공급할 것이라는 점을 간파했던 것이다.

그가 투자한 104개 종목 가운데 37개는 이미 부도가 난 기업이었는데, 그 가운데 미주리 퍼시픽 레일로드도 있었다. 한때 주가가 100달러가 넘었던 이 회사는 대공황의 여파로 파산 직전이어서 배당금도 지급하지 않았다. 템플턴은 이 회사의 우선주를 주당 12센트씩 800주를 매수했다.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자 철도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미주리 퍼시픽도 다시 이익을 내기 시작했다. 그는 투자 원금의 40배인 주당 5달러에 주식을 팔 수 있었다.

템플턴은 단순히 저가주 사냥에 나선 것이 아니라 충분한 준비와 분석을 통해 아무도 모르는 사실을 알아냈고, 결정적인 순간에 과감하게 투자한 것이다. 전쟁이 터졌을 때 가장 높은 수익률을 기록하는 주식은 그때까지 이류나 삼류로 뒤처져 있는 기업이라는 사실을 템플턴은 누구보다 먼저 찾아냈다.


세계를 대상으로 투자 범위를 넓히다

이 사례에서 드러나듯이 템플턴의 투자 성공 비밀은 진정으로 구하고 묻고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템플턴은 또한 월스트리트의 투자자들이 세계로 눈을 돌리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요즘 한국 투자자들에게도 인기를 끌고 있는 글로벌 투자를 이미 50년 전부터 실행한 셈이다.

미국에서 뮤추얼펀드가 새로운 투자 수단으로 부상할 무렵인 1956년 자신의 이름을 붙인 템플턴 그로스 펀드를 출범시킨 템플턴은 1960년대 월스트리트에서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던 일본 주식시장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도쿄 주식시장이 개장된 1949년 닛케이 평균 주가는 179였고, 1970년대 초까지 도쿄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을 전부 합쳐도 IBM 한 회사의 시가총액에도 못 미쳤다. 그가 일본에서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한 1968년 도쿄 주식시장에 상장된 주식의 주가수익비율(PER)은 평균 3배로 미국의 15배에 비해 턱없이 낮았다.

그러나 템플턴은 단순히 일본 주식시장에 주목한 것이 아니라 그 중에서도 ‘최고로 싼(the best bargain)’ 주식들을 골라냈다. 히다치, 닛산자동차, 마쓰시다전기, 스미토모 신탁은행, 야스다화재 등이 그가 집중적으로 매수한 종목들이다. 모두가 우수한 경영진과 세계적인 기술력, 높은 시장점유율을 가진 기업이며, 내재가치에 비해 매우 저평가된 주식들이었다. 야스다화재의 경우 장부가치의 20%에 거래될 정도였다.

그는 한때 자신이 운용하는 뮤추얼펀드 자산의 50%를 일본 기업에 투자하기도 했다. 템플턴의 예측대로 도쿄 주식시장은 1960년대 말부터 1980년대까지 그야말로 최고의 활황세를 보였다. 마침내 1986년 도쿄 주식시장 상장 종목의 평균 PER이 30배를 넘어서자 그는 보유 주식 대부분을 처분했다. 당시 일본에서는 PER이 75배까지 갈 것이라는 낙관론이 지배적이었다. 사실 닛케이 평균 주가가 1989년 말 3만 9,000선을 넘어선 것을 감안하면 그의 매도 타이밍은 조금 빠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 후 2년 만에 닛케이 평균 주가가 1만 4,000선까지 떨어졌고, 2000년대 들어서는 1만 선 아래로까지 추락했다는 점을 떠올리면 그의 판단은 정확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일찍부터 일본으로 눈을 돌린 것은 당연히 최고로 싼 주식을 찾기 위해서였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투자 대상을 골라야 최고로 싼 주식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의 뮤추얼펀드 본사가 있는 미국과 캐나다를 비롯해 독일•스위스•스페인 등 유럽 국가와 한국•일본•중국•홍콩•싱가포르 등 아시아 국가,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국가가 모두 그의 투자 무대다. 분산투자는 여러 기업, 다양한 산업은 물론 여러 국가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게 그의 투자 원칙이다.

템플턴은 특히 최고로 싼 주식을 고르기 위해 전 세계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 1만 5,000개 기업을 조사한다. 이들 기업 중에서 투자 대상 리스트(the bargain list)를 선정하고, 리스트에 오른 기업들 중에서 우선순위를 정해 포트폴리오에 편입한다. 그리고 숨어 있는 진정한 가치가 주가에 반영되기를 기다린다. 그의 주식 보유 기간은 평균 5년이다. 템플턴이 주식을 파는 시점은 ‘주가가 많이 상승해 더 이상 싸지 않을 때’와 ‘현재 보유 주식보다 50% 이상 더 싼 다른 주식을 발견했을 때’다.

템플턴은 1912년 테네시 주 윈체스터에서 태어나 예일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 2학년이던 1931년 주가의 움직임이 매일같이 급변하는 것을 보고 그는 ‘기업의 가치는 순간순간 변할 수 없는데 주가는 왜 이렇게 움직일까’ 하는 의문을 가졌다. 그 후 템플턴은 이 의문을 풀기 위해 평생을 투자의 세계에서 활동한 셈이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교 유학 시절 주말과 방학을 이용해 유럽 각국과 일본까지 35개국을 여행했다. 세계 각국을 대상으로 한 포트폴리오를 실행하기 위한 준비 작업이었다. 그의 이 같은 노력은 글로벌 펀드의 새 장을 여는 계기가 됐다.


월스트리트의 정신적 지주

하지만 템플턴이 투자를 하는 목적은 여느 펀드매니저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는 펀드 운용을 ‘신성한 신탁(a sacred trust)’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장기적인 투자 목표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돕고 정신적인 진보에 도움이 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의 이 같은 뜻은 공식 은퇴를 20년 앞둔 1972년 인류애와 종교적 성취가 뛰어난 인물을 선정해 시상하는 템플턴상(The Templeton Prize)을 창설한 데서 잘 나타난다(종교계의 노벨상이라고 일컬어지는 템플턴상은 지금까지 테레사 수녀와 빌리 그레이엄 목사, 알렉산더 솔제니친, 한국의 한경직 목사 등이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그는 1987년 인류애 증진과 박애정신 고양에 헌신한 공로로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으로부터 작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템플턴은 85세가 되던 1997년에 자신의 사무실 임대 기간을 10년 더 연장했을 만큼 장래를 낙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 1999년 11월에 열린 기관투자가 연례회의에서 그는 다우존스 평균 주가가 21세기 안에 100만 포인트를 돌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너무 허황한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100년 전을 되돌아보면 그렇다. 20세기 초 다우존스 평균 주가는 100에도 못 미쳤지만 1999년 3월 마침내 1만 선을 돌파했다. 템플턴이 강연한 시점의 다우존스 평균 주가가 1만 600 수준이었으니 해마다 평균 10%씩만 상승한다 해도 2047년에는 100만 포인트에 도달한다. 연평균 상승률이 4.6%만 돼도 2099년에는 100만 포인트에 이른다.

템플턴은 또 어린 시절부터 복리이자의 신비함에 흠뻑 빠졌다고 회고한다. 1626년 네덜란드 상인이 불과 24달러에 맨해튼 섬을 샀지만, 이 돈을 받은 인디언이 연리 8%의 복리수익률을 올렸다면 지금 맨해튼 섬을 다시 매입하고도 돈이 남을 것이라는 얘기를 그는 자주 한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일찍 투자하라고 조언한다. 남은 생애에 복리수익률의 혜택을 더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패닉과 버블의 그늘에서 벗어나라

월스트리트에서도 손꼽히는 낙관주의자인 템플턴이지만 그가 가장 경계하는 것은 군중심리다. 패닉과 거품이 모두 군중심리에서 비롯되며, 결국에는 둘 다 허망하게 사라지기 때문이다. 2000년 초 마침내 터져버린 닷컴 주가의 거품 역시 그가 경계했던 군중심리의 소산이었을 것이다.

“버블은 몇 달 혹은 몇 년까지 지속될 수 있다. 기본적인 가치를 무시한 투자자들은 루머와 주변의 정보에 솔깃해져 어떤 가격이건 지불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들 역시 결국에는 진정한 가치를 깨닫기 마련이다. 그때가 되면 시장은 패닉에 빠지고 온통 팔자 주문이 쏟아지면서 거품은 붕괴되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덧붙인다.

“모두가 절망에 빠져 주식을 팔 때 매입하고, 남들이 앞뒤 가리지 않고 사들일 때 파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장래에는 엄청난 투자 수익으로 당신에게 보답할 것이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16건 1 페이지
게시물 검색
PC 버전으로 보기